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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후기/책_음악_공연

[북리뷰] 퇴사하겠습니다: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의 의미를 고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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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퇴사자'의 바로 '그 책'

작년에 SBS 스페셜이나 뉴스 등에 소개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해진 일본인 퇴사자가 있다. 이나가키 에미코 씨이다.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름은 전혀 몰랐고, 그냥 TV에서 몇 번 봤던, 뽀글뽀글한 봉봉 머리를 한 얼굴만 기억났었다. 몰랐는데, 작가는 그게 '아프로 헤어' 라더라. 이 사람의 책이(물론 퇴사에 관한 책이다) 꽤 많이 팔렸고, 우리나라에서도 사람들이 2018년에 꽤 많이들 읽었던 기억이 난다.  

 

 

고양이들이 출근을 하는 것 같은 표지. 근데 왜 고양이지? 잘 이해가 안가는 표지.

 

 

처음 절반: 막연했던 퇴사가 구체화 되어 간 시간들. 

작가는 책의 반을 할애하여 어떻게 '퇴사' 라는 생각이 본인 안에서 시작됐는지, 그 시작이 결국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에 대해서 유쾌하고 무겁지 않게 얘기해준다. 읽다 보면 어느새 몰입해서 글을 따라가게 된다. 회사에 다녀본 성인이라면 누구나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는 생각들이 이어진다.

 

 

"아무리 커리어를 쌓고 경험치를 올려도 이런 강박관념이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커져간다는, 날벼락처럼 충격적인 현실이었습니다."

 

"중년기에 접어든 사원들은 회사에서 '선별' 대상이 됩니다. 어제까지 동료였던 사람들이, 혹은 후배들이 오늘부터는 상사가 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과거에 부하로서 가르치고 질책했던 상대가, 이번에는 내 원고를 고치고 기획을 좌초시키곤 합니다. 그런 것들을 아주 태연하게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렇게 태연히 견딜 자신이 없었습니다....과거의 나를 참을성 있게 키워준 '회사'라는 것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언제 내게 상처 줄지 알 수 없는 무서운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그런 공포를 나는 언제까지 인내해야 하나.... 그리고 회사에 패했을 때, 나는 대체 어떻게 될까"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게 되어습니다. '일=회사'는 아닐 것이다. '회사'='인생'은 아닐 것이다. 언제는 회사는 그만둘 수 있다, 가 아니라, 정말로 회사를 그만두겠다. 그런 답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입사 후 처음 해보는 그런 생각들이, 내 안에서 급속히 부풀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는 어느날 문득 마주하게 된, 그러나 사실은 오랫동안 무언가 누적되어 만들어진 것 같은, 내면의 신호(불편함, 불안함, 두려움, 끝 모를 욕망)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조금씩 본인을 회사와 분리해서 인지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중요 포인트는, 이 모든 내용들이 아주 가볍고 읽기 쉽게 쓰여 있다는 것이다. 노부담 at all ㅎㅎ

 

 

마지막 절반: 퇴사 이후의 삶, 그리고 '회사', '일', '사회 시스템', '그 속에서의 개인'

사람들의 우려를 뒤로하고 퇴사한 이후의 삶은 확실히 녹록지 않고, 회사 다닐 때는 신경 쓸 필요 없었던 일들이 매우 어렵고 불편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작가는 이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과 불편함에 놀라다가도, 어찌어찌 앞으로 나아가며 본인의 행복한 순간들을 하나씩 찾아 나간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회사와 사회의 강한 연결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심지어 사회를 '회사 사회'라고 말한다. 사회의 거의 모든 시스템이 (과장을 살짝 해서) 이런 회사와의 연결에 의지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작가가 '회사'와 '회사에 의지하고 있는 사회'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시스템이 세상의 유일한 '옳은 길'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시스템의 밖에 존재하고 있지만 그래도 얼마든지 사회를 유지하고 지탱해 나가는 데에 큰 역할을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작가 스스로도 이 '시스템 밖'에 속해서 사회를 위해 일을 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다. 

 

 

냉장고 버리기나 '가주기' 어쩌고 하는 부분은 공감되지 않지만...

작가의 글 중 일부는 공감이 조금 어려웠다. 예를 들어, 전기를 안쓰고(퇴근 후 돌아와서 집에 불을 켜지 않음, 가전제품 사용하지 않음), 필요 없는 물품 버리고, 적은 돈이나 물건으로도 본인의 행복을 찾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내용은 얼마 전 유행하던 미니멀리즘이 생각나는 부분이다.

 

작가에게 이 부분이 퇴사 결정으로 가는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였다는 건 이해했지만, 이런 내용은 그다지 공감은 되지 않았다. 가주기라니 처음 듣는 말... 냉장고를 버리고, 어두우면 불 안키며 사는 삶이라니.. 그거 TV에서 나오는 자연인 아니야?; ㅎㅎ 

 

 

재미있는 문체, 공감가는 생각들

공감이 안되던 일부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것은 꽤 즐거웠다. 읽다 보면 종종 가볍게, 돌려서 의문스럽고 불편한 부분들을 툭툭 던지는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 사실 매우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일 수 있는 내용들을 모두 아주 가벼운 어투로 무겁지 않고 친숙하게 취급한다. 직접적인 비난은 거의 없고, 회사나 국가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는 듯하다가도 곧 본인을 낮추면서 상대(?)의 좋은 점을 말해 긴장을 흘려버린다. 오랜 시간 사회생활을 한 어른의 글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꽤 행복한 상태의 어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회사와 사회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일과 회사가 항상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 속에서 개인의 일이란 어떤 것일지.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나도 같이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회사에 다녀야만 제대로 사는 것일까. 일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와 회사, 그 속에서 나라는 개인은 어떻게 되는걸까?

 

이건 꼭 퇴사하려는 사람들만 읽어야 하는 책이라기보다, 직장인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이었다. 이미 퇴사를 결심한 사람들에게는 퇴사 과정에 대한 공감과 퇴사 후 생활에 대한 후기를 얻을 기회가 될 것이고, 아직(?) 퇴사와 거리가 좀 있는 직장인들에게는 일과 스스로와의 관계, 회사와 스스로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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