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빅토리아] 새해의 첫날을 지역주민들과 함께 - NewYear's Levee day!!!
내, 선택. 여행이야기 / 2010/03/11 16:12
2010년의 첫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힘껏 단장하고 Levee day 행사를 다녀왔습니다.
이곳 빅토리아에서만 있는 일인지 캐나다 전체에서 항상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매년 첫날에 시청이나 government house에서 Levee day 행사가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동안 공관을 개방하고, 방문한 지역 주민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줍니다.
(Levee 라는 단어는 아무래도 프랑스어에서 온 영어 같은데 자세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각 공관마다 개방 시간은 다 다르기 때문에 가시기 전에 신문기사등을 통해서 미리 확인을 해 보시는게 좋습니다.
저는 Government House에 갔다왔습니다.
평소에도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해서 정원을 산책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원은 평소에도 드나드실 수 있습니다. Governmebt House에는 BC주의 부총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1년에 한 번 Levee day에 공개되는 이 저택에 들어가보기 위해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습니다.
개방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2시까지 단 2시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날 워낙 사람들이 많이 왔고, 비오는 날씨에 줄서서 기다린 주민들에게 시간 다 되었으니 돌아가라고 하기 미안했던지 당일 12시 즈음 되어 오픈 시간을 조금 연장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빨리 보고 나가달라는 당부가 따라 붙었습니다.
안에 들어가보니 정면에 커다란 벽난로 가득 장작이 타고 있고, 양 옆으로 영국 여왕 부처의 커다란 초상화가 붙어있었습니다. 긴 줄을 따라서 지하로 향한 계단을 내려가니 코트를 맡기는 곳도 있고, 캐나다 원주민들이 그린 듯한 그림들도 있고,
영국 여왕이 방문했을 때 사용한다는 의자와, 이곳에 왔을때 사용했던 옷 가지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줄 따라 움직이는 지라 이곳저곳 자세히 둘러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만, 그래도 신기한 마음에 최대한 열심히 둘러봤습니다.
다시 위로 올라오는 계단을 따라 올라왔고 벽에는 전대 총독들의 초상화나 사진들이 쭉 걸려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참 인자하게 생겼고, 어떤 사람은 딱봐도 '아, 군인이었나봐!' 싶고, 어떤 사람은 너무 엄해보였고.. 총독들의 초상화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사람들의 줄이 어떤 홀을 향해 이어지고 있었는데 홀의 입구에 제복을 차려입은 남자와 그의 부인으로 보이는 듯한 사람이 앉아있고, 그 옆에 한 남자가 역시 제복을 입고 서 있었습니다.
다가가니 서 있던 남자가 이름을 묻습니다. 나름대로 또박또박 발음한다고 발음했습니다만 역시 한국 이름이라 발음이 힘들었는지 완전히 다른, 이상한 이름으로 저를 옆에 앉아있던 사람에게 소개합니다.
여기와서 하루 이틀 있었던 일도 아니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습니다. 뒤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데 그 남자를 붙잡고 "그게 아니에요" 하면서 정확한 발음을 가르쳐 줄 용기가 없었기도 했고요.
옆에 서 있던 남자에게 제 이름을 들은, 앉아있던 풍채 좋아보이는 남자가 웃으며 악수를 청합니다.
제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여기 분이신 것 같고.. 앉아 계시는 걸 보니 나이만큼 직급도 있으신 분 같은데
외모는 동양인의 모습이라 당췌 누구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만(캐나다 원주민이셨어요. 여기서는 퍼스트 제너레이션이라고 하더라고요.), 뭐 높은 사람인가보다~ 하면서 같이 악수를 했습니다. 역시 이 분도 제 이름을 발음하지 못하셨지요.
그 부인되시는 듯 보이는 여자분과도 인사한 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알고보니 그 분들이 BC주의 부총독 내외시더군요.
잠시 설명을 드리자면 캐나다는 영국 왕실과 총리가 결정하여 캐나다의 총독을 임명합니다. 하지만 요즘엔 캐나다인이 임명되고 있으며 사실상 큰 권한을 가지지는 못하는 자리입니다. 그래도 상징적으로 캐나다의 가장 높은 자리이지요.
그 캐나다의 총독이 각 주에 부총독을 임명합니다. 그러니 BC주의 부총독이라면 이 곳 BC주 안에서는 직급상 가장 높은 분이 되시겠네요.
홀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스코티쉬 전통 복장을 입은 분들도 많고, 가슴에 훈장처럼 보이는 것들을 잔뜩 달고 있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저처럼 Levee day 구경하러 들어온 일반 사람들도 많았지요.
홀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2층에는 오케스트라(또는 군악대- 잘 보이지 않아서 자세히 모르겠어요)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어서 올라갈 수 없게 계단이 막혀 있었습니다.
홀의 1층에서는 펀치과 스프, 티, 커피, 쿠키 같은 것들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만 워낙 사람들이 많이 와서인지
음식이 모잘라보였습니다.
그렇게 차도 마시고, 쿠키도 먹으며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감상하며 사람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음악에 맞춰 홀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었고, 저처럼 이것 저것 열심히 가져다 먹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전통 복장 입으신 분들과 군인이신 듯 보이는 분들, 가슴에 훈장을 잔뜩 다신 분들은 홀 곳곳에서 모여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고요.
그러다가 갑자기 스코틀랜드 백파이프 연주소리가 들렸습니다.
오케스트라도 연주를 멈췄고 홀 안에 있던 사람들도 다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집중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백파이프 연주자를 앞세워 부총독이 홀 안으로 들어오더니 단상으로 올라갔습니다.
부총독의 새해연설 동안에 홀 안에 있는 어느 누구도 시끄럽게 굴거나 딴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야 이런 연설을 들어본 경험도 없었고, 교장선생님 말씀하실때 딴짓하던 기억밖에 없는지라 그 모습이 조금 신기했지요.
부총독의 연설중에 "새 해의 첫날, 지역 주민분들이 이렇게 많이 오셔서 홀을 덥혀 주셔서 고맙다"는 말이 기억납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이 참 인상깊었어요.
연설이 끝나자 다들 "God saves the Queen"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캐나다의 역사나 정치적인 상황에 대해서 전혀 모르던 저였기 때문에
왜 캐나다 사람들이 (아무리 봐도 '영국'의 수반을 지칭하는 것 같은)여왕을 노래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캐나다의 역사부터 살펴봤었습니다.)
물론 저야 이 지역의 상황에 대해서 지역 주민들만큼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이 지역에 오래 살지도 않아서
이 행사의 이면에 어떠한 목적이 있으며, 지역주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새해 첫날 각 시청의 건물과 Government House가 개방되고
지역 주민들은 시간과 거리상 편리한 곳을 방문해서
음식을 나누고 각 공관의 최고직급자들을 만나는 것이 참 신기했고, 한 편으로는 좋아 보였습니다.
이곳 사람들의 삶을 살짝이라도 같이 공유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 즐겁기도 했고, 뭔가 정말 특별하게 한 해의 첫 날을 시작한 기분이었습니다. 혹시 연말에 캐나다 빅토리아를 방문할 일이 있으시면 새해 첫날 근처 시청이나 Government House를 방문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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